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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1. 심리학도가 군대가면 겪을지도 모르는 일


심리학을 전공하셨던 분이라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독특한 경험들 꽤 많이 하셨을 겁니다.

특히 "심리학"이라는 단어 하나 때문에 겪게될 수 있는 일들이 생각보다 다양할텐데 오늘은 그것에 대해 한 번 적어보도록 하죠.

저 역시 지금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고 특히나 논문 준비를 범죄 쪽과 연관지어서 하다보니 더욱 더 특이하게 보고 접근하는 분들이 많았었는데, 같은 과를 나온 많은 친구들도 이야기 하다보면 별에별 일을 다 겪게 되더군요. 

한 친구가 군대에 가게되고 처음 자대배치를 받았을때 겪었던 일입니다.

제 친구는 특히나 저보다 "범죄"쪽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저야 원래는 임상심리쪽에 좀 더 관심이 있었는데 이 친구는 처음부터 "탐정"같은 일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진학하게된 독특한 친구였죠.

집에 가면 수많은 추리소설들과 실제 사건과 관련된 여러가지 사례집이 모여 있었고, 이것들을 토대로 추리 소설을 쓴다거나 실제 발생하는 사건을 정리해보는 등 오히려 저보다 더 이쪽에 잘 맞는 친구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엔 서로 관심 있던 분야가 달라 친하지 않았으나 같이 지내다 보니 서로 알고 있는 지식을 교환하는 일이 잦아졌고 이게 또 시너지가 있어서 서로가 하는일이 더욱 잘 풀리게 되어 더욱 가깝게 지내게 되었죠.

아무튼 그러던 와중에 학부생활이 끝나고 곧장 군대로 가게된 친구. 평소에도 트렌치 코트 입는걸 즐겨했고 셔츠와 구드를 신는걸 좋아했었는데 갑자기 딱딱한 군화와 불편한 전투복을 입으니 영 적응 못할 것 같다고 징징대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게 떠오릅니다.

그 동안 친구랑 함께 지내면서 처음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면 하지말아야 할 행동으로 정한게 몇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학과가 어디인지 말하는 것".

밖에 있을땐 잘 지켜졌는데 이게 또 군대라는 폐쇄된 공간에 들어가니 지켜질 수 가 없더군요.



4주간의 군사훈련을 마치고 그 친구는 해안쪽에 있는 부대로 배치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약 2년 동안 함께 지내야 하는 군생활의 첫 시작. 어떤 사람들로 가득할지 긴장되는 마음으로 전입 신고를 마치고 쉼터에서 대기 중.

저 멀리서 온몸에 여유가 보이는 병사들 세명이 자신에게 서서히 다가오는 통에 뭘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있던 사고는 정지되었습니다.

눈이 안좋아 계급은 안보였지만 행동만으로도 상병 이상이라 생각이 되어 더욱 얼어 있었는데 지근거리까지 다가오자 보이는 무거운 계급표...

더욱 긴장한 상태로 정면만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신입이냐?"

몸의 여유 만큼이나 목소리도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상급병의 질문에 배운거라곤 "큰소리"밖에 없었던 친구는

"이병 OOO 금일 부로 전입을 명 받았습니다!" 라고 외친후 눈치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 이후는 역시나 군대 다녀온 분들이라면 겪었을 신상조사.

알고보니 해안부대의 특성인지 병력이 많이 없는 부대여서 전입이 잦은 편이 아니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한동안 신병없이 지낸 턱에 남아있는 병사들은 거의다 상병말 병장들 뿐이었고 거의 막내급으로 오게되어서 엄청난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반년간은 좀 힘들었는데 1년 지나니 왕고가 되어서 엄청 편하게 지냈다는 훈훈한.. )


아무튼 그러던 중에 어디 학교 무슨 학과에 다니다 왔냐는 질문을 듣게 되었고 당연히

"심리학과 에서 공부하다 왔습니다!" 라고 대답하게 되었죠.

근데 이게 군 생활을 골치아프게 만들었을 줄이야...


선임병 셋중 가장 계급이 높았고 별로 관심 없어 하던 왕고가 드디어 이 친구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

"야 너 그럼 최면도 걸줄 아냐??"


....


요즘엔 이런 분들 많이 없지만 당시만해도 심리학이란게 "심리테스트, 생각 알아맞추기, 최면" 같은 특이한 유희꺼리로 생각하고 있던 분들이 더 많았었던 것 같습니다.

군대가기전 친구들이랑 얘기할때 "군대에선 무조건 안다고 해라" 라고 나름의 결론을 내린 후 헤어졌던지라 친구는...

"넵! 조금 할 줄 압니다!" 라고 대답해버렸고... 

순식간에 변하는 주변사람들이 약간의 거리를 두며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떠나버린말은 주워담을 수 없었고 "설마 해보라고 시키겠어?"라고 생각하며 나름 안정을 되찾고 있었는데...

"그럼 나한테좀 걸어봐. 나 전생에 뭐였는지 알려주면 니 앞으로 작업 안해도되게 해줄께"

"!?" 최면이라곤 그냥 책에서 살짝 본게 전부인 친구였지만 작업열외란 소리에 정신이 나가서는 "한번 해보겠습니다!" 라고 당당히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최면시간


평소 범죄학이라던가 수사학 등에 관심이 있었던지라 최면 수사에 대해 몇번 들어본 적이 있긴했으니.. 대충 상황만 연출한 후 걸리지 않으면 상황 핑계를 대며 넘어갈 심산이었죠.

군대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편한 의자에 최고 선임병이 편안하게 누워있고 이제 갓 짝대기 하나를 달고 들어온 전입1일차 신병이 바로 코앞에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상황. 

이 광경은 쉬이 목격할 수 있는 것도 아닌지라 낮에 자고 있던 후반야 근무 병들도 다들 일어나 둥글게 둥글게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단순히 "하는 척"만 하고 끝낼 생각이었는데 일이 점점 커져버리니 친구는 흔들리는 동공을 멈추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뭐라도 해야 한다!' 라고 생각한 친구

목에 걸려있던 군번줄을 꺼내어 TV프로그램에서 보던 장면 처럼 조금씩 흔들어 봅니다.

"마음을 편안히 하고 눈앞에 흔들리고 있는 군번줄에 시선을 맡겨보십시오"

"군번줄의 움직임이 점~점 느려지고 느려질 수록 마음은 편해져 시간이 멈춘 듯 잠에 빠지게 됩니다."

.......

...

..

.


"쿵!" 


어차피 배웠던 것도 아니고 별일 없겠지 싶어 대충 생각나는데로 말했는데 대상자였던 선임병이

"야 이XX 이상해 걸리는거 같아" 

????

친구로썬 뭔상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더욱 멍 하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와 XX 그냥 구라치는 줄 알았는데 진짜였네 ㅋㅋ 야 앞으로 얘 건드리지 마라 내꺼다"

"!?"

그렇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몰라도 대충 말한 친구의 말에 그 선임은 뭔가 기분이 묘해짐을 느끼게 되었고 순간적으로 깜짝놀라 일어난 후 자기 마음데로 "이녀석은 뭔가 있다"라고 생각했는지 최면을 멈추게 한 것입니다.

진짜 최면이 걸린 후 뭔 행동을 한다거나 말을 했던건 아니지만 (사실 이 이후로 최면걸어서 자기 군생활 편하게 했다는 소리도 종종 듣긴 했답니다.) 덕분에 선임병 전용 상담관이 되었고.. 

그렇게 편할줄 알았던 군생활은 그 선임병이 1개월 후에 전역하게 되면서 더욱 곤란해져만 갔다고...

(사격훈련후에 탄피 어딨는지 맞춰보라는 둥,, 부대내 개가 임신해 왔는데 아빠가 누군지 맞춰보라는 둥.....)


- 끝 - 


사실 최면이란게 피 암시성에 취약한 사람일 수록 더욱 빠져들기 쉬운 기법입니다.

위 상황에선 친구의 그럴듯한 말과 평소에 최면이란걸 있다고 굳게 믿어왔던 사람, 그리고 상황이 자연스럽게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라 볼 수도 있겠죠.

실제 최면을 사용하는 분의 말에 의하면 "최면은 거는 것 보다 푸는게 더 힘들고 주의해야 한다" 라고 할 정도이니 "거는 것 자체"는 고난이도의 작업은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이 사건은 아직까지도 술자리에서 종종 회자되는 내용인데 그 이후 그 선임병은 아직까지도 힘든일이 있다거나 고민이 있으면 연락을 해온다고 합니다. 


결국 군대에서 잠깐 편해지려고 했던일이 평생 개인 상담사로 일하게 만들었다는.... 조금은 슬픈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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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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